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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기록
2025년 02월 09일 주일 예배 설교 본문
출애굽기 2장 9~10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나를 위하여'에서 '주를 위하여'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번성하게 해 주셨다.
- 그중에서 레위 지파 안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고, 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생명에 위협을 느꼈다.
- 바로가 새로 태어난 남자아이들을 다 나일 강에 던져 죽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 그러나 부모는 그럴 수 없었고, 아이를 숨겨서 키우게 되었다.
- 3개월이 지났을 무렵,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져서 더 이상 키울 수 없게 되어 갈대상자에 담아 나일강가 주변에 버리게 되었다.
- 이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볼 수 있다.
- 생명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인도와 은혜가 필요하다.
출애굽기 2장 3~5절
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 이는, 부모가 할 수 있는 선택의 유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 그러나 바울의 딸이 이를 발견했고, 자신이 키우겠다고 했다.
- 당장의 궁으로 데려가지는 못하게 되어서 유모를 찾았고, 그 유모가 실제 어머니였다.
- 히브리식으로 '모세'라는 이름으로 짓게 되었다. (모세 : 건져냄을 받는 자)
갈대숲에서 갈대상자를 발견했는데, 이 모습이 생소했을까?
- 히브리인의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냈을 것이다.
- 그 당시에 나일강가에는 이 아이 말고도 수많은 아이들이 버려지고 있었다.
- 바로의 딸은 이 아이를 보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고 불쌍해서 다시 갈대상자에 보낼 수 없었다.
- 그러다 한 여인이 바로의 딸에게 유모를 붙여주겠다고 하고, 유모를 데려오게 되었다.
출애굽기 2장 9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 바로의 딸이 한 말이며, 그녀의 심정을 보여준다.
- 바로의 딸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고 했다.
- 불쌍해서가 아닌, 이 아이에게 하는 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기에, 함부로 할 수 없고, 바로의 딸의 책임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 유모의 손에 키워지기는 하지만, 이 아이는 이미 노예가 아닌 바로의 딸의 식구가 되고, 애굽의 왕궁의 사람이 되는 것을 가리킨다.
- 이제는 왕을 대하듯, 공주를 대하듯, 애지중지하면서 키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
- 바로의 딸을 위하여 그들이 했어야 하는 모습이었다.
로마서 14장 8절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 당시, 유대인들이 헷갈려하는 것이 율법을 지키며 살아오던 자신의 삶이었다. 어디까지 지키고 어디까지 관둬야 할지 말이다.
- 우상에게 바쳐지는 음식을 먹어도 되는지 말아야 하는지, 안식일을 계속 지켜야 하는지 등 교회 안에서 다툼이 싸움이 나는 상황이었다.
- 그때 사도 바울이 한 말이다.
로마서 14장 3절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 '나'를 위함이 아닌, '주'를 위하여 품고 이해하고 인내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 이것이 주를 위한 것이며,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의 모습이다.
- 더 이상 상대방을 막 대할 수 없는 것이다.
- 율법을 어긴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이성적인 판단으로 잘못되었다고 해서 남을 비판할 수 없다.
- 왜냐? 주님을 위해서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는다.
- 몇 번 정도 볼 사이라면 다시 안 보면 되니깐, 상처를 받지 않는다.
- 그러나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부터 받는 상처는 계속해서 생각이 나고 묵상이 된다.
-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 주를 위해 행하지 않고, 나를 위해 행했기 때문이다.
예배를 드리는 이유,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 다 그분을 위한 것이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감각이 없는 자들은 이를 이해할 수 없다.
- 우리가 개, 소, 로봇과 같이 감정 없이 살 수 있는 걸까.
- 하지만, 다시 묵상해봐야 한다.
주를 위한다는 것의 의미
- 교회를 사람을 대할 때, 그리스도를 대하듯 사랑하고 먹이고 헌신하라는 것이다.
- 나 자신을 위한 것,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닌, 주님을 위한 것처럼 말이다.
- 이를 대할 때마다 주님이 생각나야 한다.
주님 때문에 이해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 그것이 주님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이기에, 힘이 들고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 그러나 주님을 위해서 내려놓을 수 있고, 용서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도록 애써지는 것이다.
-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 할 수 있는 것이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을 위해서 행하는 것이다.
- 내 마음을 내려놓고, 나의 인간적인 마음이 나를 위하는 보상적인 마음을 가질 때마다,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 주를 위해서 기꺼이 그 일을 행하고, 그 길을 갈 수 있길 소망한다.
오늘도 귀찮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우리의 육신을 갈아내야 하는 일들이 많아 보인다.
- 내 삶도 바쁘고 힘겨운데, 교회에 와보니 내가 해야 할 일이 쌓여 있고, 헌신하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이만큼 놓여 있다.
- 나를 위한 일이라면, 내 삶도 지치고 힘들기에 할 수 없다.
- 나를 위한 일이라면, 하기 싫을 때도 있다.
- 하지만, 주를 위한 일이라면, 이를 행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 힘과 능력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나를 위하여는 할 수 없지만, 주를 위하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수많은 사명, 일들 속에서 나를 위해 행하는 일들보다, 주를 위하여 행할 수 있는 성도가 되길 소망한다.
- 나를 위하여는 할 수 없지만, 주를 위하여는 할 수 있는 성도가 주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다.
- 분명히 주님께서 그 성도를 통해 드러내실 것이다.
Summary
: 출애굽기 2장에서 바로의 딸은 모세를 "나를 위하여" 키우라고 했지만, 이는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것이었고, 모세는 결국 노예가 아닌 왕궁의 사람이 되었다. 로마서 14장에서 바울은 신앙생활에서 "나를 위해"가 아니라 "주를 위해" 살아야 함을 강조하며, 율법 준수나 음식 문제보다 주를 위한 배려와 사랑이 중요함을 말했다. 우리가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받는 이유도 "나를 위하여" 행동하기 때문이며, 주를 위해 살아가면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 신앙의 본질은 나 자신이 아니라 주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며, 헌신과 사랑도 주님을 위해 행할 때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하나님이 힘과 능력을 주시며 주의 영광이 드러나게 된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 살아가기로 결단할 수 있다. 내 힘과 감정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용서하기 힘들며,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지만, 주님을 위해서라면 내려놓고 행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의 판단과 감정보다 주님의 뜻을 우선하며, 가까운 사람들을 주님을 대하듯 사랑하고 섬기기로 결단할 수 있다. 또한, 신앙생활에서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따르며, 모든 일에 있어서 ‘나를 위하여’가 아니라 ‘주를 위하여’ 행하기로 결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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